무대 위에 선 당신에게 — 김영하 『단 한 번의 삶』을 읽고
무대는 비어 있고, 마이크 하나만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 표지의 일러스트는 단순하지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관객도, 배우도, 조명도 없는 그 무대 위는 어쩌면 우리의 삶을 은유하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 조용히 무대 한가운데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위에서 단 한 번, 단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김영하의 『단 한 번의 삶』은 그 제목부터 이미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이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 책은 그가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이자, 작가 김영하가 아닌 인간 김영하의 깊은 내면이 고스란히 담긴 기록이다. 그는 이번 책에서 삶을 무대 위 공연처럼 바라본다. 리허설 없이, 대본 없이, 오로지 자신만의 목소리로 채워가야 하는 공연. 그 공연의 막이 오르고 내리는 사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다. ‘나’, ‘사람들’, ‘시간’, ‘세상’이라는 키워드를 따라가며, 저자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질문들을 조용히, 그러나 예리하게 되짚는다. 그는 조언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와 함께 고민하고, 질문을 나눈다. 그러기에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 ‘함께 읽는 사유의 산책’과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삶은 연습할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매 순간 무대에 오르고, 그 무대는 언제나 본 공연이다.” 우리는 종종 완벽한 순간을 준비하려 하며, 실수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김영하는 말한다. 실수해도 좋다고, 멈춰도 괜찮다고. 단 한 번뿐인 삶이기에, 그 모든 과정이 이미 완벽한 공연의 일부라고. 이 담담한 위로는 마치 겨울 끝자락, 아직 차가운 바람 속에서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처럼 마음을 데워준다.
책 전반에는 작가 특유의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이 흐른다. 그는 인생의 ‘사용법’을 제시하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의 삶을 가능성으로 보여준다. 어떤 이는 빠르게 달리는 삶을 택하고, 또 어떤 이는 머뭇거리며 걷는다. 그 모든 삶은 유효하며,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그는 강조한다. 특히 ‘시간’에 대한 장에서는, 지나간 과거를 애도하는 법, 현재를 음미하는 법, 불확실한 미래를 견디는 법에 대해 철학적이고도 사적인 고백을 나눈다.
이 책은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비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내가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우리는 종종 타인의 시선, 사회의 기준, 성공이라는 이름의 대본에 얽매여 자신을 잃는다. 그러나 『단 한 번의 삶』은 말한다. 당신은 당신의 방식으로 살아도 된다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라고.
김영하의 글은 여전히 군더더기 없고, 깊이 있다. 문장은 간결하지만 울림은 크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문득 멈추게 되는 문장들이 많다. 그 멈춤은 생각의 틈이 되고, 그 틈 사이로 삶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스며든다. 이 책은 그런 ‘틈’을 선물하는 책이다.
『단 한 번의 삶』은 삶의 방향을 잃었거나, 혹은 너무 많은 길 앞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것이 청춘이든, 중년이든, 혹은 그 어느 시점이든 상관없다. 무대 위에 선 모두에게 이 책은 작지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마이크 앞에 선 당신에게 작가는 말한다. “지금, 당신의 목소리로 삶을 시작하라.”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의 이유 독후감 리뷰 - 김영하 (1) | 2025.05.31 |
---|---|
어른의 품격을 채우는 100일 필사 노트 독후감 리뷰 (0) | 2025.05.31 |
초역 부처의 말 독후감 리뷰 (1) | 2025.05.30 |
엄마의 말 연습 독후감 리뷰 (0) | 2025.05.29 |
청춘의 독서 독후감 리뷰 (1) | 2025.05.29 |